[기획-디아스포라] 37. 한국의 민족의식 발전과 해결 과제...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포용도 쉽지 않아
한인이 처해진 현실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 제시... K-문화로 이민 2~3세 포용부터 시작
민진규 대기자
2026-10-19
2024년 윤셕얼정부는 가칭 '이민청'을 설립해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며 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산업연수생 제도만으로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행정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업무를 확대하면 이민업무도 통합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정치 구조에서 이민청 신설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지 못했다. 외국인에게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는 정책에 대한 반발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민족의식이 강한 국민성도 한몫하고 있다.


▲ 1953년 3월9일자 미국 타임(TIME) 잡지의 표지 [출처=홈페이지]


◇ 한국 역대 정부의 민족주의와 포용성 강화...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포용도 쉽지 않아

한국 민족은 단군 조선 이후 한반도에서 5000년 동안 생활해왔다. 고려시대까지 민족이라는 인식은 부족했지만 조선에 들어서 중국 종족, 일본 종족과 다르다는 족류, 동포 개념이 생겼다.

하지만 조선은 중국, 일본과 교류하며 민족이라는 개념을 앞세우지 않았다. 1907년 이후 중국의 민족론에 영향을 받아 민족이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초기 ‘단군과 기자의 후예’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단군의 후예’로 약칭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이후 민족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민족이라는 개념이 대중에게까지 확산됐다. 일제 식민 통치 시대에 조선 민족과 일본 민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저항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을 강조한 ‘종족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가 탄생했다.

저항적 민족주의는 일본이 식민 통치를 진행하며 조선인을 차별하고 억합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정립됐다. 종족 민족주의는 민족이 근대화 이전에 존재한 공동의 문화적 유산과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론이다. 근대 이후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근대론을 반대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온 단일민족 신화는 단재 신채호 등 구한말 민족주의자들이 종족의 순수성과 영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 산물이다.

우월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억압적 식민 지배를 자행하는 일본 민족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 국민 통합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안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정부는 북한을 적대시하며 통일을 지향하는 ‘종족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반면에 북한의 김일성정부는 남한을 적대시하며 민족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강조했다. 민족의 정통성이 누가 이어받았는지는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대만에서 장제스(蔣介石) 총통과 정상회담을 통해 ‘아시아민족반공연맹’ 결성을 합의했다. 박정희정부는 반공주의와 통치 정당성을 주장하는 ‘종족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반공교육을 통해 북한 정권을 악마화하며 남한 내부의 단결을 유도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이데올르기 전쟁을 벌였다. 사회주의자가 남한 내부에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위로부터의 종족 민족주의’는 군사 독재와 분단정치의 고착으로 귀결됐다. 반공주의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지식인을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종족 민족주의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중시하는 ‘민족 지상주의’로 발전했다. 민족 지상주의는 민족의 통일을 목표로 하거나 외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지향한다.

박정희정부는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주의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남한 주도의 통일을 원했다. 1972년 남북정상 이후 통일에 대한 의욕이 감퇴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출발했다.

전두환정부는 박정희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반공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반공(反共)은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이며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이어진 소비에트와 폴란드 전쟁 당시 폴란드 전역에서 반공 민족주의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공산주의인 소비에트의 침략에 대항해 폴란드 민족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 서유럽 전체로 혁명을 전파하기 위해 폴란드를 침공했다.

우리나라에서 군사 독재에 저항하던 학생운동권의 종족 민족주의는 1980년대 ‘반미(反美)주의’로 표출됐다. 주한미군의 철수, 남북통일에 외세 불간섭 등과 같은 주장은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高麗民主聯邦共和國) 통일방안과 유사했다. 학생운동권이 외치던 반미구호는 북한의 반미운동과 비슷해 보수 세력이 진보 세력을 공격하는 빌미로 작용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나던 탈북자는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북한 이탈주민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남한에 정착한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탈북자가 생기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 탈북한 사람은 시장경제에 적증하기 어렵다.

농촌과 3D 업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등으로 종족 민족주의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단일민족이라는 용어가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작동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인구 감소 대책으로 이민정책이 논의되며 민족이라는 용어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전혀 잘못된 주장은 아니지만 민족 대신에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이 높다.


▲ 한인 디아스포라-역사와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한인이 처해진 현실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 제시... K-문화로 이민 2~3세 포용부터 시작

2000년대 초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던 대한민국은 저출산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충격적인 현실에 부딪혔다.

197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198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며 인구 정책을 강화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저출산 현상은 청년층의 고단한 삶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소득에 비해 높은 주택가격, 생활비, 교육비 등은 청년층이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20여 년 동안 2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급기야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하락 추세를 보이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청년층이 아이를 낳도록 양육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노동자는 저출산보다는 농촌과 3D 업종의 근로자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됐다. 1990년대 초반 경제가 호황을 보이면서 근로가 임금이 급상승하며 저임금으로 버티던 산업이 고사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나온 방안인 외국인 근로자의 수입이었다.

중국의 재중동포, 한족 등 중국인의 유입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재둥동포는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 건설 노동자, 식당 등 요식업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도 농촌과 제조업에 필요한 노동자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다. 열악한 작업 환경, 비인간적인 대우, 임금 체불, 체류 기간의 제한 등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에 속한다.

한인의 정체성을 지탱하던 고유문화의 상실도 고민거리다. 1945년 해방 이후 서구 문화의 무차별적인 수용으로 전통문화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 이어져 온 유교문화, 단일 공동체의 결속력, 전통음식 등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성인은 나름 해외 문화의 수용을 위한 판단력을 갖고 있지만 청소년은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이라 혼란이 가중되는 편이다. 특히 의복이나 음식에서 서구화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이며 이미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사회규범이나 행동양식도 서구화의 추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세계화 물결이 확산되며 미국 문화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식민주의, 문화제국주의라는 비판이 거셌지만 위성방송,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한인은 K-문화(K-Culture)라는 새로운 형식을 창안했다. 한국 문화와 서양문화의 융복·합로 양자의 장점을 잘 활용했다.

음악, 드라마, 영화 등에서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이른바 K-팝(K-POP), K-드라마(K-Drama), K-무비(K-Movie)가 유튜브,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OTT(Over-The- Top)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김치, 라면, 김밥 등의 음식도 전통보다는 현대식으로 재해석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한인 고유의 음식으로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집중조명되는 중이다.

라면은 일본이 처음 개발한 원조국이지만 한국의 매운맛을 첨가하며 종주국을 능가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밥도 K-문화의 인기 덕분에 세계적인 건강식품으로 등극했다.

독일의 철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차용한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시대에 개별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어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를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로 도약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K-문화가 세계의 주류 문화(mainstream culture)로 자리매김하면 세계 각국에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가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다. 이민 2~3세도 한인 정체성을 갖는 것이 주류 문화에 편입되는 데 유리하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한인 디아스포라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어떤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암시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명확한 비전(vision)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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