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디아스포라] 28.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산가족 현황과 이슈 ... 종교적 이유로 강제 분할되며 2000만 명의 이산가족 발생
펀잡 지방의 인도와 파키스탄 이산가족... 정부가 방치한 상황에서 민간인 주도의 상봉 시도 이어져
민진규 대기자
2026-09-04 오전 8:53:12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1600년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에 무역 독점권을 부여하며 회사 설립을 승인했다. 1595년 네덜란드가 인도 항로에 진출해 향료 무역을 독점하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동인도회사는 유럽에서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항로를 개척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과 경쟁했다. 1612년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주(州) 항구도시인 수라트(Surat)에 무역 거점을 수립한 후 1640년 마드라스, 1668년 봄베이, 1690년 캘커타 등으로 확장했다.

1857년 인도에서 세포이 반란이 일어나며 영국 정부는 1858년 인도를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한다. 1947년 6월 3일 인도 자치령 총독인 루이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이 인도를 독립시키되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하겠다고 공표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8년 독립한 이후 70년 이상 종교, 영토 등을 이유로 갈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양국의 국경선이 접하고 있는 펀잡은 거대한 이산가족의 집결지로 전락했다.


▲ 인도 자치령 총독인 루이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백작의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산가족 현황... 종교적 이유로 강제 분할되며 2000만 명의 이산가족 발생

인도는 1947년 8월 16일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며 힌두교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 자치령과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 자치령으로 분열됐다. 이를 ‘인도 분할’ 혹은 ‘인도의 분할(Partition of India)’이라고 칭한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종교적으로 통합이 불가능해 별도의 국가로 떨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국경선을 획정한 영국 관리였던 시릴 래드클리프(Cyril Radcliffe)가 인도를 방문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1947년 7월 8일 인도에 도착해 동년 8월 15일까지 힌두교의 인도와 무슬림이 거주할 파키스탄을 분리해야 했다.

당시 인도는 하나의 국가로 다수의 민족과 종교 인구가 복잡하게 섞여 거주하고 있어서 국경선을 나누기기 쉽지 않았다. 북부 펀잡 지방을 중심으로 국경선이 획정되며 약 2000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이 생겼다.

펀잡 주에서만 고향을 두고 국경을 넘어야 했던 주민이 1200만 명에 달했다. 무슬림은 인도령에서 파키스탄, 힌두교도는 파키스탄령에서 인도로 각각 이주해야 했다.

파키스탄에 거주하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인도, 인도에 거주하던 무슬림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일부 주민은 이동을 거부했지만 무자비한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100만 명이 넘는 주민이 분리를 거부해 폭행당해 사망했다.

일부의 사례에서 보듯이 1947년 국경선이 획정되던 당시에 가족이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반대편 지역을 방문했다가 이산가족이 된 경우도 많았다.

분단된 이후에도 양국은 국경선을 두고 3차례의 전쟁을 벌였고 종교적으로도 극단 대결을 서슴지 않아서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주의적 배려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 한인 디아스포라-역사와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펀잡 지방의 인도와 파키스탄 이산가족... 정부가 방치한 상황에서 민간인 주도의 상봉 시도 이어져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산가족이 가장 많이 발생한 펀잡주(州)는 1947년 분할되기 이전에는 힌두교도, 시크교도, 이슬람교도 등이 평화롭게 살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영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국경선이 그어지며 토지, 주택 등의 재산을 두고 갈등이 증폭됐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산가족의 한을 풀지 못했다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면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영화제작자인 스파르쉬 아부자(Sparsh Ahuja)는 2018년 ‘프로젝트 다스탄(Project Dastaan)’을 시작했다. 1947년 남아시아 국가인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분단되며 생긴 이산가족의 상봉을 돕기 위한 목적이다.

스파르쉬의 할아버지는 1940년 펀잡 잔드에서 태어났는데 이 마을은 무슬림이 다수였다. 1947년 국경선이 분리되면서 이슬람교도는 힌두교도를 색출해 죽였다.

하지만 무슬림으로 마을의 족장 직책을 맡고 있던 사람은 무자비한 폭력으로부터 스파르쉬의 할아버지 가족을 보호해줬다. 이후 가족은 안전한 인도의 뉴델리로 이주했다.

스파르쉬는 할아버지의 경험을 듣고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이라도 지원하고자 영화를 제작한다. 고령의 이산가족이 가상현실(VR)로라도 자신이 태어났지만 다시는 가지 못하는 고향을 가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화상으로 상봉하는 이산가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프로젝트가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남아시아 지역을 강타하며 양국 간 이동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 모두 이산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극적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서 민간 차원에서 유튜브(Youtube) 채널 개설, 틱톡(TikTok)으로 홍보, 영화 제작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흩어진 이산가족의 사연을 접수해 방송하는 방식이다.

당시 헤어진 사람 대부분 고령이고 유튜브나 틱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에도 인도와 파키스탄 국민은 다른 국가로 여행이 불가능하다. 한가지 예외가 있다면 인도에 거주하는 시크교도의 성지 순례다. 파키스탄에 시크교 성지가 있어 이곳에서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지고 있다.

2022년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 형과 인도에 거주하는 동생이 75년 만에 유튜브를 통해 상봉한 사례도 있다.

편지나 전화 통화는 어렵지만 윗츠앱(WhatsApp)으로 연결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면 연락을 유지하지 못한다.

파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혼란도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되찾으며 극단주의 이슬람에 대한 의견 충돌이 많은 편이다.

- 계속 -
저작권자 © 엠아이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기획·특집 분류 내의 이전기사
주간 HOT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