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디아스포라] 35. 민족의 정체성과 관제민족주의... 언어와 종교 및 음식이 민족 정체성을 확립
일본 제국주의도 대동아공영권을 모토로 침략전쟁 미화... 중국은 제국주의에 대항한 5·4운동부터 민족부흥 시작
민진규 대기자
2026-10-07 오전 10:34:59
20세기 초부터 불어닥친 민족주의 열풍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의 확산으로 민족보다는 글로벌 시민(global citizen)이라는 용어가 잠시 사용됐지만 미풍에 그쳤다.

민족에 대한 강한 신념은 민족우월주의로 체계화되며 주변의 열등한 민족을 탄압하는 도구로 작용했다.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유대인을 대규모로 학살한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6년 현재 지구 곳곳에서 민족의 대결이 전쟁의 형태로 확산 중이다. 2022년부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민족에 대한 갈등을 조장했다. 중동에서의 분쟁은 중세부터 이어져온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 독일 요하네스 쿠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동상 [출처=위키피디아]


◇ 언어와 종교 및 음식이 민족 정체성을 확립... 일제의 단발령에 저항한 것도 민족의식 발로

언어와 종교 등도 민족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언어가 민족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중세에 라틴어는 귀족과 성직자만 사용하고 일반인은 문맹(文盲)으로 문자(文字) 대신에 구술(口述)에 의존했다.

독일 요하네스 쿠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1445년 납으로 금속활자를 만들기 전까지 글자를 모르는 일반인은 마을이나 부족 중심으로 생활했다.

마을마다 혹은 길드(guild)를 중심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했지만 국가 차원의 통일된 말은 없었다. 지역마다 다른 다양한 방언(dialect)만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방언은 표준어가 아닌 지역의 사투리를 말한다.

인쇄술은 종교혁명을 불러왔을 뿐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포함한 책의 출간을 부추겼다. 구술로 전해지고 있던 이야기나 지역마다 다른 언어가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일되며 각 나라는 자체 말과 문자를 갖게 됐다.

지역마다 다른 방언을 사용하면서 소통이 어려웠지만 인쇄된 책이 나오면서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형성됐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국가(nation)를 형성하고 국가주의(nationalism)가 나타났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민족을 형성하는데 기여했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십 개의 국가로 구성된 유럽은 개신교와 기독교가 양분하고 있다.

유럽은 종교혁명 이전까지 로마의 교황청을 받들고 가톨릭을 신봉했다. 부패한 교회와 성직자에 대항한 개신교가 세력을 얻으며 종교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확립한 국가도 생겨났다.

16~17세기 잉글랜드의 성공회, 덴마크와 스웨덴의 루터교회, 제네바와 네덜란드의 칼뱅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동로마제국의 정교를 받아들인 불가리아, 세르비아, 러시아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국가체제를 운영했다.

전 세계에 수천 개의 민족이 있지만 종교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민족을 결집시키는데 종교의 역할이 약하다고 보기 어렵다. 같은 종교를 믿으면 민족이 달라도 여간해서 전쟁을 도발하려 하지 않는다.

두발, 음식, 매장 풍습 등도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두발은 머리카락을 묶는 방식을 말하며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靑)을 세운 만주족은 변발(辮髮)로 적군과 아군을 구분했다.

한민족은 고조선부터 머리를 묶어 올리는 상투를 틀었다. 고구려의 벽화나 신라의 도기에도 상투를 한 인물이 그려져 있다.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으로 몽고식 개체 변발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조선은 과거의 상투를 살렸다.

1895년 고종이 단발령을 내려 상투를 깎으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양반을 중심을 반발이 컸다. 일본이 강요한 단발령을 반대하며 의병을 일으킨 양반도 있었다.

특정 음식은 민족을 구분하기에 좋은 소재다. 한민족은 김치를 먹는데 해외로 이주한 한인도 현지의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김치를 담근다. 발효 식품인 김치를 만드는 방법은 동일하다.

1930년대 스탈린 강제 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간 한인도 김치를 만들었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당근을 활용해 만든 김치를 마르코프차(марков-ча)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은 후 장례를 치리는 방식도 민족마다 다르다. 유교 문화권은 시신을 땅에 묻는 반면에 불교 문화권은 불에 태우는 화장을 한다. 불교의 영향을 시신을 화장해야 하지만 땔감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역은 현지 사정에 적합한 방식을 찾아야 했다.

중국 서부 지역에 위치한 티벳의 풍장(風葬)도 나무가 부족한 건조한 고원지대에서 시신을 모시는 방법이다. 풍장은 시간의 바람에 실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를 장례 도구로 활용해 조장(鳥葬)으로 불렸다.

몽골의 초원에서는 늑대가 새를 대신했다. 늑대는 몽골족이 신성시하는 동물이고 초원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어 시신을 해결하는 용도로 적합하다. 풍장은 매장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고대부터 도입했으며 가장 오래된 인류의 장례 방식이다.


▲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미래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관제 민족주의의 부흥과 몰락... 일본 제국주의도 대동아공영권을 모토로 침략전쟁 미화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는 ‘관이 주도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민족 감정을 주입하는 것’을 말한다. 민족주의는 일반 민중이 스스로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관제(官製)라는 말 자체에서 보듯이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필요성에 따라 민족주의를 이끌어나간다.

서양이나 동양 모두 중세부터 축적된 거대한 다(多)언어 영지에 대한 왕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으로 관제 민족주의를 활용했다. 민족과 왕조 제국이 합병된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19세기 중엽부터 유럽 내부에서 ‘대중 민족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관제 민족주의’가 발달했다.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제 민족주의를 주입시켰다.

대중 민족주의는 민족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심을 강조하는 포퓰리즘(populism) 정치를 낳는다. 일반 대중을 동원해 권력을 회득하고 유지하는 방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930~40년대 독일의 나찌즘이나 이탈리아는 파시즘이 대표적이다. 정치인은 민중의 의지를 잘 따라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를 거부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를 비판한다.

1990년대 한국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중산층이 결집하며 미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을 타자로 인식했다. 한국 중심의 세계관으로 추진된 정책은 IMF 외환위기를 촉발해 국가를 나락으로 몰고 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중 민족주의는 위대한 중국을 의미하는 ‘대중화권(Great China)’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세계화와 경제성장으로 열등감을 극복한 우익을 중심으로 중화민족의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발로다.

중국의 대중 민족주의는 1919년 일제의 제국주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5·4운동부터 시작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거쳐 200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관제 민족주의는 대중 민족주의와 달리 철저하게 정부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정러시아의 로마노프(Romanov) 전제정, 대영제국의 식민지 잉글랜드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영 등이다.

제정러시아의 로마노프 전제정은 ‘대러시아(Great Russia)’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영토가 확장되며 관료와 기업가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주로 귀족 중에서 선발된 관료는 식민지에서 높은 직책과 막대한 권력을 부여받았다. 식민지에 가면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과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기업가는 독점 시장을 확보함으로써 막대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대영제국은 빅토리아(Victoria) 여왕 시절에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 식민지를 보유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 주민에게 잉글랜드식 교육체계를 도입해 정신 개조 교육을 강화했다.

잉글랜드에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던 중산층은 관료, 교원, 상인, 농민 등으로 식민지에 이주해 정착했다. 중등 교육만 이수해도 식민지에서 고급 관리나 상류층으로 신분이 상승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식민지에서 고급 관리로 임용됐다.

일본 제국주의는 1867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해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바쿠후(幕府)를 무너뜨리고 탄생했다. 상급 사무라이는 제국의 고급 관리로 국가정책을 주도했다.

중급 사무라이는 서방의 군사학을 흡수해 현역 군인으로 식민지 전쟁의 첨병 역할을 담당했다. 가장 하층민인 일반인은 군입대를 통해 봉사하느 대신에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정부는 프로이센의 모델을 수입해 관제 민족주의의 기반을 구축했다. 1894년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이후 대만을 식민지로 확보했다. 1910년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만주, 중국,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등으로 영토를 넓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전쟁으로 최소 2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천황 위주의 국가체제는 유지하고 있으며 민족국가라는 자부심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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