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내부고발과 경영혁신] 50 미국 베트남 전쟁 조작 사례연구... 정권보다 언론의 자유와 공익을 중시한 미국 사법부
조작된 정부비밀 공개해 베트남 전쟁 종식 유도... 정직하게 대내외 정책을 수립·집행해야 국민 신뢰 얻을 수 있어
베트남 정부는 2025년 4월30일 베트남 전쟁 종전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1954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약 3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내전으로 시작된 통일 전쟁은 1961년 미국이 남베트남에 군사 지원을 시작하며 국제전쟁으로 확대됐다. 1864년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한 이후 1965년 미군은 북베트남에 공습을 가하며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1973년 1월 미국은 북베트남과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전쟁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1975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통일하며 전쟁은 끝났지만 약 5만8000명의 미군도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배한 치욕적인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베트남은 폐허속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미국 국방부의 내부고발 사건을 분석해보자.
▲ 미국 국방부가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된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내역 분석 [출처=iNIS]
◇ 조작된 정부비밀 공개해 베트남 전쟁 종식 유도... 정권보다 언론의 자유와 공익을 중시한 미국 사법부
미국이 베트남전에 공식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1964년 북베트남이 통킹만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USS Maddox)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이른바 '퉁킹만 결의'를 통과시켜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에게 전쟁 수행 권한을 부여했다. 내부고발자인 대니얼 엘즈버그(Daniel Ellsberg)는 국방부에서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관여했다.
엘즈버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영국 케임브릿지대에서 공부했다. 1954년 해병대에 입대해 1958년부터 랜드 연구소에서 핵전쟁 관련 게임이론을 연구했다.
랜드 연구소에서 통킹만 관련 비밀문서를 접하고 1969년 이를 복사해 외부로 유출했다. 복사한 문서는 '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1967년‘ 등으로 7000페이지에 달했다고 한다.
'펜타곤 페이퍼'는 린든 존슨 행정부 말기 국방부와 민간 외교 전문가들이 작성한 것으로 베트남전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한 과정을 담았다. 미국 국방부의 1급 비밀로 전쟁을 벌이기 위한 명분 축적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엘즈버그는 1971년 베트남에서 만난 뉴욕타임즈 기자인 닐 시핸(Neil Sheehan)에게 관련 서류를 넘겼다.뉴욕타임즈는 통킹만 사건이 미군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닉슨 행정부는 뉴욕타임즈를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며 보도 금지 명령을 내렸다. 또한 1973년 엘즈버그를 스파이 행위와 음모, 정부 재산 도용 등의 혐의로 로스앤젤레스(LA)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미국 대법원은 뉴욕타임즈에 대해서는 수정헌법 제1조에 근거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뿐만 아니라 LA 연방법원도 엘즈버그에 대한 사건을 기각했다.
펜타곤 페이퍼의 유출이 정부 재산을 도용한 것인지 여부, 보도가 언론의 자유에 해당되는지 등 다양한 논란을 촉발했으며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엘즈버그는 존슨 행정부가 제안한 연방수사국(FBI) 국장직 등을 고사하고 반전 운동가로 여생을 보냈다.
엘즈버그는 2023년 6월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의 사회적 역할과 국민의 의무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와 사회를 정직하게 만들고 정치인과 공무원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든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내부고발은 가치가 있는 선택이라는 점도 교훈으로 남겼다.
◇ 정직하게 대내외 정책을 수립·집행해야 국민 신뢰 얻을 수 있어... 전근대적 사고 갖춘 한국 사법부 반성해야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한 이후에도 1991년 걸프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2011년 리비아전쟁 등 다수의 전쟁에 참전했다.
특히 이라크전쟁은 베트남 전쟁과 유사하게 전쟁의 원인인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의 개발 관련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내부고발이 일어났다.
부시 전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치적 목표는 달성하는데 실패했다.엘즈버그 내부고발의 쟁점과 판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정부가 전쟁을 벌이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사실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지 않는다. 국가정보기관이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비밀공작을 수행하지만 용인되는 범위를 초과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냉전 당시의 국제정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주장하지만 정책 결정과정이나 의도가 바람직하지 않았다.
둘째, 법원은 국가의 비밀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충돌에서 후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국민의 알권리보다 국가의 비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비밀 중에서도 권력자나 소수 기득원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내용은 보호할 필요성이 적다. 전직 대통령의 뇌물 사건이나 개인 일탈행위조차도 국가비밀로 보호해주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셋째, 언론 스스로 언론의 자유를 보호받으려면 사실(fact)에 대한 철저한 확인과 국가 이익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미국 언론조차도 다수 내부고발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하며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언론은 내부고발의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곤 한다. 내부고발이 아니라 특정 이해관계자 간의 이권 다툼에 가까운 '단순 폭로'가 다수를 점유하는 편이다.
넷째, 내부고발을 위해 유출한 문서에 대한 소유권, 유출 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 등에 대해 유연한 대응이 요구된다. 미국 정부도 엘즈버그에 대해 정부 재산의 도용이라는 죄목을 적용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내부고발 내용의 중대성이나 공익적 고려보다 내부고발자의 근무지 이탈, 문서 작성을 위해 사용한 종이나 컴퓨터 등을 중요시해 처벌한다. 국민의 사회적 인식과는 정반대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를 존경할 국민은 없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정직하게 중요한 대내외적 정책을 결정하고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50년이 지난 일이지만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미국에서조차도 내부고발에 대한 일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의 처지는 아직 개선되지 않았다.
- 계속 -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내전으로 시작된 통일 전쟁은 1961년 미국이 남베트남에 군사 지원을 시작하며 국제전쟁으로 확대됐다. 1864년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한 이후 1965년 미군은 북베트남에 공습을 가하며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1973년 1월 미국은 북베트남과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전쟁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1975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통일하며 전쟁은 끝났지만 약 5만8000명의 미군도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배한 치욕적인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베트남은 폐허속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미국 국방부의 내부고발 사건을 분석해보자.
▲ 미국 국방부가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된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내역 분석 [출처=iNIS]
◇ 조작된 정부비밀 공개해 베트남 전쟁 종식 유도... 정권보다 언론의 자유와 공익을 중시한 미국 사법부
미국이 베트남전에 공식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1964년 북베트남이 통킹만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USS Maddox)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이른바 '퉁킹만 결의'를 통과시켜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에게 전쟁 수행 권한을 부여했다. 내부고발자인 대니얼 엘즈버그(Daniel Ellsberg)는 국방부에서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관여했다.
엘즈버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영국 케임브릿지대에서 공부했다. 1954년 해병대에 입대해 1958년부터 랜드 연구소에서 핵전쟁 관련 게임이론을 연구했다.
랜드 연구소에서 통킹만 관련 비밀문서를 접하고 1969년 이를 복사해 외부로 유출했다. 복사한 문서는 '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1967년‘ 등으로 7000페이지에 달했다고 한다.
'펜타곤 페이퍼'는 린든 존슨 행정부 말기 국방부와 민간 외교 전문가들이 작성한 것으로 베트남전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한 과정을 담았다. 미국 국방부의 1급 비밀로 전쟁을 벌이기 위한 명분 축적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엘즈버그는 1971년 베트남에서 만난 뉴욕타임즈 기자인 닐 시핸(Neil Sheehan)에게 관련 서류를 넘겼다.뉴욕타임즈는 통킹만 사건이 미군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닉슨 행정부는 뉴욕타임즈를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며 보도 금지 명령을 내렸다. 또한 1973년 엘즈버그를 스파이 행위와 음모, 정부 재산 도용 등의 혐의로 로스앤젤레스(LA)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미국 대법원은 뉴욕타임즈에 대해서는 수정헌법 제1조에 근거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뿐만 아니라 LA 연방법원도 엘즈버그에 대한 사건을 기각했다.
펜타곤 페이퍼의 유출이 정부 재산을 도용한 것인지 여부, 보도가 언론의 자유에 해당되는지 등 다양한 논란을 촉발했으며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엘즈버그는 존슨 행정부가 제안한 연방수사국(FBI) 국장직 등을 고사하고 반전 운동가로 여생을 보냈다.
엘즈버그는 2023년 6월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의 사회적 역할과 국민의 의무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와 사회를 정직하게 만들고 정치인과 공무원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든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내부고발은 가치가 있는 선택이라는 점도 교훈으로 남겼다.
◇ 정직하게 대내외 정책을 수립·집행해야 국민 신뢰 얻을 수 있어... 전근대적 사고 갖춘 한국 사법부 반성해야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한 이후에도 1991년 걸프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2011년 리비아전쟁 등 다수의 전쟁에 참전했다.
특히 이라크전쟁은 베트남 전쟁과 유사하게 전쟁의 원인인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의 개발 관련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내부고발이 일어났다.
부시 전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치적 목표는 달성하는데 실패했다.엘즈버그 내부고발의 쟁점과 판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정부가 전쟁을 벌이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사실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지 않는다. 국가정보기관이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비밀공작을 수행하지만 용인되는 범위를 초과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냉전 당시의 국제정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주장하지만 정책 결정과정이나 의도가 바람직하지 않았다.
둘째, 법원은 국가의 비밀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충돌에서 후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국민의 알권리보다 국가의 비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비밀 중에서도 권력자나 소수 기득원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내용은 보호할 필요성이 적다. 전직 대통령의 뇌물 사건이나 개인 일탈행위조차도 국가비밀로 보호해주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셋째, 언론 스스로 언론의 자유를 보호받으려면 사실(fact)에 대한 철저한 확인과 국가 이익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미국 언론조차도 다수 내부고발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하며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언론은 내부고발의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곤 한다. 내부고발이 아니라 특정 이해관계자 간의 이권 다툼에 가까운 '단순 폭로'가 다수를 점유하는 편이다.
넷째, 내부고발을 위해 유출한 문서에 대한 소유권, 유출 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 등에 대해 유연한 대응이 요구된다. 미국 정부도 엘즈버그에 대해 정부 재산의 도용이라는 죄목을 적용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내부고발 내용의 중대성이나 공익적 고려보다 내부고발자의 근무지 이탈, 문서 작성을 위해 사용한 종이나 컴퓨터 등을 중요시해 처벌한다. 국민의 사회적 인식과는 정반대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를 존경할 국민은 없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정직하게 중요한 대내외적 정책을 결정하고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50년이 지난 일이지만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미국에서조차도 내부고발에 대한 일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의 처지는 아직 개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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