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디아스포라] 18. 중국 재중동포의 역사와 고민...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남북분단으로 귀환하지 못해
중국 한족 중심의 대중화주의로 차별정책의 희생양으로 전락... 한국으로 대거 이주하며 동북 3성의 공동체 붕괴
민진규 대기자
2026-07-24 오후 2:32:01

▲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소수민족 인형 [출처= iNIS]

중국은 1만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황허문명(黃河文明)의 발상지다. 인류 역사를 바꾼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발명한 국가로 아시아 대륙의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반도는 중국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의 정치적 격변기마다 큰 홍역을 경험했다. 한민족이 최초로 세운 고조선도 한(漢)나라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로 전락했을 정도다.

한반도를 처음 통합한 신라의 삼국통일도 중국 당(唐)의 지원을 받았을 정도로 중국 대륙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중국은 높은 산으로 막힌 서쪽보다 동쪽으로 진출하길 원했다.

한반도에 수립됐던 역대 왕조는 중국으로부터 제철기술, 도자기, 종이, 인쇄술, 화약, 문자, 서적. 예술 등을 적극 수용했다.

한반도와 중국의 경계선인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은 대륙과 교류하는데 넘기 어려운 장벽은 아니었다. 현재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역사를 알아보자.


▲ 한인 디아스포라-역사와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수 [출처=엠아이앤뉴스]


◇ 1860년대부터 농토 확보를 위해 이주 시작...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남북분단으로 귀환하지 못해

광대한 대륙으로 진출을 꿈꾸었던 한민족은 고구려와 발해를 마지막으로 한반도로 밀려났다. 고려는 군사력이 취약해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지 못했다.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명(明)의 정벌을 반대한 이성계가 건국했으므로 대륙 진출에 대한 의지조차 없었다.

조선이 출범한 이후 한민족이 만주로 본격 진출한 것은 1860년대부터다. 1636년 터진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에 전쟁포로로 약 60만 명에 가까운 조선인이 청으로 끌려갔지만 이들은 노예였지 정상적인 이주민이라고 볼 수 없다. 중국으로 한인의 이주 역사와 특징, 진출 동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대륙인 중국과 5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하게 교류한 한인은 침략전쟁을 벌일 정도로 진취성이 강하지 않았다. 1000회에 가까운 침략을 당했지만 한 번도 침공하지 않아 평화를 숭상하는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했을 정도다. 100년 넘는 중국으로 이주 역사는 크게 5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1860~1919년 초기 한인사회가 형성되는 시기다. 조선말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 탐관오리의 약탈과 과중한 세금을 피해 평민의 이주가 주류를 이뤘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항일운동가와 농민이 이주하며 한인공동체가 본격적으로 구성됐다. 조선에서 벼슬을 하던 양반이나 강제로 퇴직당한 군인도 이주민에 합류했다.

2단계는 1919~1949년 일제의 대륙침략과 국공내전(國共內戰) 기간을 포함한다. 1919년 식민지 조선에서 3·1 만세운동이 실패하자 무장 독립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애국지사의 중국 이주가 본격화됐다.

1932년 일제는 대만주제국(大滿洲帝國)을 세우면서 개척단이라는 맹목으로 조선 농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압록강과 두만강 접경지인 만주 뿐 아니라 상하이로 이주하는 행렬도 늘어났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에 거주하던 조선족은 한반도로 복귀하거나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반도가 이념에 따라 남한과 북한으로 분리되고 중국에서 내전이 발생한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3단계는 1956~1979년 민족의 시련기로 분류된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과 소련 지도자 니키타 후르시초프(Nikita Khrushchev)는 사회주의 종주국 자리를 두고 갈등했다.

1956년부터 소련으로부터 기술 독립을 꿈꾸던 마오쩌둥은 이른바 ‘대약진 운동’을 추진했다. 한족 중심의 경제재건 운동으로 조선족은 지방 민족주의자로 찍혀 숙청을 당했다.

1960년대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다.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으로 정치적 박해를 받은 조선족은 국경선이 맞닿은 북한으로 이주를 감행했다.

4단계 1978~1991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소수민족에 대해 큰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철권통치를 유지하던 마오쩌둥과 달리 유연한 사고를 가진 등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장악했다.

5단계 1992년 이후 한중수교와 양국의 협력으로 화해의 시대가 열렸다. 청년을 중심으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조선족도 늘어났다.

인력 유출이 발생하며 이른바 중국의 동북 3성으로 불리는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숫자가 급감하며 공동체가 붕괴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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