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디아스포라] 14. 그리스인 디아스포라의 한계와 극복 노력... 언어와 종교를 기반으로 디아스포라 정체성 유지
주변국 거주민에 대한 탄압이 모국으로 귀환 대열 형성... 속인주의를 채택해 교민의 국내 정착 지원과 유대감 고취
민진규 대기자
2026-07-13 오전 9:11:26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채로 성장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경제를 나락으로 몰고갔다. 물가는 폭등하고 청년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했지만 무능한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조차 수립하지 못했다.

직접 민주주의의 발상지이며 찬란한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 문명국이라는 자존심은 처참히 무너졌다. 정치인은 권력 다툼에 혈안이 되었고 공무원은 내 밥그릇 지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국가위기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해외에 거주 중인 교민의 도움이다. 망해가는 고국을 살리기 위해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휴지 조각이나 다름 없는 국채를 구입해줬다.

우리나라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봉착하자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던 것과 유사한 흐름이 전개된 것이다. 사실 이 당시에도 일반 소시민은 장농에 들어있던 금붙이를 내놓았지만 기득권을 자신의 배를 불렸다.

그리스도 국가는 망했는데 일부 부자와 공무원은 내몰라하고 국가위기를 외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리스 경제는 정상적인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리스인 디아스포라가 고국을 구심점으로 삼아 똘똘 뭉치고 있어 미래가 어둡지는 않다. 문화 유산을 무기로 삼은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운업도 막강한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 한인 디아스포라-역사와 미래 표지 by 민진규 교 [출처=엠아이앤뉴스]


◇ 언어와 종교를 기반으로 디아스포라 정체성 유지... 주변국 거주민에 대한 탄압이 모국으로 귀환 대열 형성

그리스인 디아스포라가 수천 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언어와 종교의 힘이었다. 그리스어는 고대부터 지중해 교역을 위한 공용어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해외 거주 그리스인이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3세로 넘어가도 생업 유지에 중요했다. 종교는 정교회가 비잔틴 제국에서 활성화되자 이를 수용했다. 해외에 형성된 그리스인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언어보다는 정교회가 그리스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줬다. 그리스 전통을 지키며 모국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인은 중국인과 비슷하게 상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지중해와 흑해를 중심으로 직물과 곡물 등을 거래했으며 해운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그리스인 디아스포라에 우호적이었지만 일부에서는 저항에 부딪혔다. 대표적인 지역이 튀르키예다. 그리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침공했지만 패전했다.

양국은 주민 교환을 통해 대규모 인구를 추방했다.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 튀르키예에 거주하던 정교회 신자들이 고향을 떠났다. 수십 년 혹은 수 백년 동안 살아온 고향을 잃은 교민이 많아진 이유다.

1950년대 이집트 민족주의자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대통령은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을 강제로 추방했다. 알렉산드리와 같은 대도시의 상업을 장악하고 있던 그리스인의 경제적 타격이 컸다.

1991년 소연방의 붕괴와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자 이들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이 모국으로 귀환했다. 흑해 연안의 조지아에서도 그리스인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스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화를 통해 국민으로 인정받는다. 조부모와 부모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출생증명서, 혼인 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2025년 현재 그리스와 키프로스 외부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은 약 7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시카고와 뉴욕,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등이 대표적인 그리스인 디아스포라 중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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