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선거공약 평가] 34. 일자리 창출 없이 ‘재건축 과속’… 자족도시에 역행
예술인 지원 생색내기… 4차 산업혁명 기술 투자 확대 필요, 씨드큐브 창동 같은 랜드마크 건설보다 인재 양성이 우선
민진규 대기자
2022-12-19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다시 리세션(경기후퇴)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3년간 지속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규모 재정 지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 등이 주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리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들도 기존의 금융정책을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으로 저금리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수 대열에 뛰어들었던 20~30대 투자자인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이자부담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서울특별시에서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이라 불리며 부동산 시장의 활황세를 이끌었던 도봉구의 주택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6·1 지방선거에서 도봉구청장 후보자가 제시한 선거공약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국정연)가 개발한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을 적용해 평가해 봤다. 

◇ 진보·보수 치열한 경쟁 속에 정치 성숙

역대 민선 도봉구청장은 유천수·임익근·최선길·이동진·오언석이다. 민선1기 유천수는 서울시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해 관선으로 양천구청장을 지냈다. 1996년 민주당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변경했으나 1998년 2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기 임익근은 약사 출신으로 3대 서울시의원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1기에서는 유천수, 3기에서는 최선길과 각각 경쟁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3·4기 최선길은 재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관선으로 노원구·도봉구청장을 지냈다. 민주당 소속으로 1기 노원구청장에 당선됐지만 도봉구로 정치 기반을 옮겼다.

5·6·7기 이동진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를 시작한 후 5대 서울시의원을 거쳤다. 8기 오언석은 도봉구청 공무원 출신으로 최선길에 이어 12년 만에 보수 출신의 구청장에 올랐다. 6·1 지방선거에서 도봉구청장에 당선된 국민의힘 오언석은 더불어민주당 김용석, 무소속 최순자와 경쟁해 승리했다. 후보자가 제시한 대표 공약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당선된 오언석은 5대 공약으로 △청년·창업·일자리 공약 △자영업·소상공인 지원 및 경쟁력 강화 △재산권 보호 및 지역균형발전 △여성·노인·청소년 복지 및 문화경제 △주민참여 및 데이터기반 행정 등을 제시했다.

낙선한 김용석은 △서울의 제4도심으로 도약 △도봉의 균형발전 △일자리·경제 1등구 △에너지 살림도시를 선도하고 문화체육의 활력도시로 재탄생 △참여와 소통의 혁신행정·현장행정으로 앞서나가는 도봉 등 5대 공약을 제시했다. 김용석은 3·4·5대 도봉구의원을 거쳐 8·9·10대 서울시의원을 지낸 풀뿌리 정치인이다.

선거에서 떨어진 최순자는 △도봉산·북한산 중턱에 케이블카 설치 △창동 아레나 완공과 주변 개발 △65세 어른들을 위해 알뜰폰에도 경로 적용 △65세 어른들에게 사우나 입욕권 월 4장 무료 제공 등을 제시했다. 최순자는 15·16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해 낙선한 이력을 갖고 있다.


▲ 서울시 도봉구의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의 평가 결과[출처 = iNIS]


◇ 사회·문화 공약이 전체 80% 이상 점유

8기에 당선된 오 구청장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공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활력 넘치는 상생경제도시(8)·안전하고 건강한 행복도시(10)·교통이 편리한 균형발전도시(19)·질 높은 교육문화도시(12)·투명하고 혁신적인 청렴행정도시(4) 등 5대 목표·53개 세부공약으로 구성됐다.

국정연은 오 구청장이 선거공보물에서 제시한 세부 공약 53개를 요소별로 다시 분류했다. 세부과제는 정치(8)·경제(2)·사회(30)·문화(13)·과학기술(0)로 구성됐으며 사회 공약이 전체의 56.6%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문화 공약 24.5% △정치 공약 15.1% △경제 공약 3.8% 순이며 미래 먹거리인 과학기술 공약은 0%다. 요소별 주요 공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 공약은 △스마트혁신지원단·소상공인 매니저를 통한 애로사항 해결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적극 지원 △고도지구 완화를 통한 지역균형 발전 도모 △새로운 도시환경 변화를 고려한 용도지역 상향 추진 △청년정책 전담부서 신설 △구 산하기관 유사기능 통·폐합 등이다.

둘째, 경제 공약은 △공공시설 유휴공간 등을 활용한 창업 보육공간 및 테스트베드 구축 △사전교육을 통한 경쟁력 있는 창업 지원(오픈주방·마케팅·경영·수출 등) 등으로 많지 않다.

셋째, 사회 공약은 △신혼부부·청년 공공임대주택 확대 △동북권 시민안전체험관 조성 △생애 전주기 자립 지원에 기반한 맞춤형 복지 지원 △세계보건기구(WHO) 고령친화도시 사업 추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도봉구 전 구간 지하화 추진 등으로 다양하다.

넷째, 문화 공약은 △도봉산 관광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도봉산 맑은 이미지를 활용한 수제 양조장 추진 △생계 위기의 예술인 등 지원 확대 △지역예술인이 참여하는 도시재생사업 △서울아레나 복합문화시설 건립 △씨드큐브창동 조성 등이다.

다섯째, 과학기술 공약은 1개도 없다. 창업을 지원해 일자리를 늘리려면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를 적극 확대하는 것이 유리하다. 

◇ 랜드마크 건축비를 인재에 투입해야

오 구청장의 공약을 국정연이 개발한 갑옷(ARMOR), 즉 달성 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측정 가능성(Measurable)·운영성(Operational)·합리성(Rational) 지표를 적용해 평가했다. 간략한 내역과 개선방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달성 가능성은 50점 만점에 20점으로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마트혁신지원단·소상공인 매니저를 통한 애로사항 해결은 현장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경영 문제를 풀어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2026년까지 스마트혁신지원단 지원·운영에 4880만 원, 소상공인 매니저에 3억8615만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이 정도의 예산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둘째, 적절성은 공약이 도봉구의 다양한 여건에 적합한지 평가하는 지표이며 26점을 획득했다. 동북권 시민안전체험관 조성은 519억 원의 예산을 들여 시민 안전의식 제고 및 학생의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하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설립된 안전체험관은 대형 5곳·중형 1곳·소형 12곳 등 총 18곳이 있어 공약 추진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건물과 같은 하드웨어 구축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또는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것이 교육 효과를 높이는데도 유리하다.

셋째, 측정 가능성은 공약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며 22점을 받았다. 생애 전주기 자립 지원에 기반한 맞춤형 복지 지원은 예산 1억5100만 원을 투입해 도봉형 통합복지자원 공유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한다고 현재 복지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이 100%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맞춤형 복지는 수요자 중심의 복지 서비스로 구청이 집행한 서비스가 수혜자의 입장에서 적절했는지 평가하기 어렵다.

넷째, 운영성은 행정조직과 공무원이 공약을 실천할 역량과 조직체계를 구축·운영했는지 평가하는 지표로 18점을 획득했다. 사전교육을 통한 경쟁력 있는 창업을 지원하고 시드큐브창동을 조성하는 사업도 창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공무원이 운영하기 어려운 공약이다.

다섯째, 합리성은 공약이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주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며 22점을 받았다. 생계 위기의 예술인 등 지원 확대 공약은 2023~2026년 1억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문화생태계 보호, 고용·복지 사각지대 해소, 안정적 문화예술 활동 지원, 예술인 복지 증진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예술 활동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기여하지만 경제지원으로 예술인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3년 동안 지원하겠다는 예산도 지역예술인의 숫자에 비해 너무 적으며 시장경제에 잘 적응해 생존이 가능한 예술인 위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오 구청장의 선거공약은 4년 동안 53개를 충실하게 이행해도 250점 만점에 108점으로 달성률은 43.2%에 불과하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재건축·재개발이 필요하지만 일자리와 연계되지 않은 주거지역이 장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어렵다. 창업지원도 씨드큐브 창동과 같은 랜드마크를 짓는데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사람을 키우는데 투자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란다.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공약을 평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력해 개발한 모델이다. 5G는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 밸리(Valley)는 계곡을 의미한다. 문명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곡에서 탄생해 발전했기 때문에 국가·지자체가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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