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선거공약 평가] 27. 설익은 4차산업 육성 전략… 4년 변죽만 울리다 끝날 판
혁신기술 지원·G밸리 캠퍼스 조성 등 기틀마련 시동, 빈약한 교육·문화·주거 인프라 확충은 풀어야 할 숙제
민진규 대기자
2022-11-29
이른바 G밸리로 불리는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에 있는 첨단산업기지다. 1961년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농지를 강제로 수용했다는 것이 2016년 밝혀졌지만 고도성장 시기에 수출산업공단으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산업단지임에도 열악한 근로조건·노동조합 탄압·공해산업 입주로 악명을 떨쳤다. 2000년대 들어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 부지에 아파트형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강남 테헤란밸리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기업이 입주하며 G밸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구로구는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4차 산업형 청년취업사관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6·1 지방선거에서 구로구청장 후보자가 제시한 선거공약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국정연)가 개발한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을 적용해 평가해 봤다. 

◇ 보수와 진보가 치열한 경쟁 구도 형성

역대 민선 구로구청장은 박원철·양대웅·이성·문헌일이며 박원철·이성은 진보 정당, 양대웅·문헌일은 보수 정당 출신이다. 1·2기 박원철은 외무고시·사법고시를 합격한 후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3·4기 양대웅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공직에 입문해 관선으로 구로구·용산구 부구청장을 지냈다.

5·6·7기 이성은 행정고시를 통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관선 구로구 부구청장을 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8기 문헌일은 철도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기업인으로 변신해 15·16대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6·1 지방선거에서 구로구청장에 당선된 국민의힘 문헌일은 더불어민주당 박동웅과 경쟁해 승리했다. 박동웅은 6·7·8대 구로구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후보까지 차지했지만 구청장이 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후보자가 제시한 대표 공약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당선된 문헌일은 5대 공약으로 △4차 산업을 선도하는 미래경제 중심의 첨단산업도시 기틀 마련 △재개발·재건축추진지원단 설치 △공부하기 좋은 구로 △국민 건강생활 보호 △구로차량기지 이전 및 수도권전철 1호선 지하화 추진 등을 제시했다.

낙선한 민주당 박동웅은 4대 핵심·5대 분야·91개 공약을 발표했다. 4대 핵심은 △전 구민 재난지원금 지급 △청소년 교통비 지원 △어르신 버스비 지원 △신속한 재개발·재건축 추진 등으로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사회 공약이 대부분이다.


▲ 서울시 구로구의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의 평가 결과[출처 = iNIS]


◇ 소모성 사회·문화 공약이 전체 88% 점유

8기에 당선된 문헌일 구청장은 홈페이지에 △첨단산업 도시 △공감·소통하는 도시 △공부하기 좋은 도시 △안전하고 건강한 도시 △일자리가 많은 도시 △골고루 잘사는 도시 등 6대 비전·23개 핵심전략·75개 세부공약 등을 공개했다.

선거 당시에는 6대 비전·19개 전략·89개 세부공약과 동별 공약 62개 등 총 151개 공약을 제시했지만 당선 이후 49.7%인 75개 공약으로 축소·조정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봤을 때 문 구청장이 선거기간 동안 제시한 공약은 강남구청장과 마찬가지로 수립할 때부터 부실했다고 판단된다.

국정연은 문 구청장의 세부 공약 75개를 요소별로 다시 분류했다. 세부과제는 정치(3)·경제(4)·사회(52)·문화(14)·과학기술(2)로 구성됐다. 사회 공약이 69.3%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문화 공약 18.6% △경제 공약 5.3% △정치 공약 4.0% △과학기술 공약 2.6% 순으로 나타났다. 요소별 주요 공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 공약은 △재개발·재건축사업 추진지원단 설치·운영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중교통 안전서비스 구축 △외국인 주민의 구정참여 기회 확대 등으로 많지 않다.

둘째, 경제 공약은 △서울창업허브 조성 △청년창업지원센터 설립 및 청년창업 지원 △중장년 일자리센터 확충 및 일자리 연계 추진 △구로사랑상품권 확대 발행 등이다.

셋째, 사회 공약은 △낙후지역·저층 밀집 주거지 재개발 추진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어르신 건강관리 서비스 구축 △안전한 등하교 및 학교생활을 위한 안전 사업 추진 △재난안전 체험장 설치 △고지대 도로 전기열선 도입 등으로 다양하다.

넷째, 문화 공약은 △4차 산업 분야 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G밸리 4차 산업형 청년취업사관학교 조성 △문화예술인 창작·공연활동 공간 확보 △구로형 혁신교육지구 사업 확대 추진 △일상생활 맞춤형 안전교육(6대 안전역량 강화) 등으로 인재 육성과 연관된 사업이 많다.

다섯째, 과학기술 공약은 △빅데이터·AI·IoT 등 4차 산업 육성·발전 △G밸리 서남권 대학 연계 산학연구개발(R&D) 거점 육성 등으로 단출하다. 

◇ 달성 가능성·적절정·측정 가능성 고득점

문 구청장의 공약을 국정연이 개발한 갑옷(ARMOR) 즉 달성 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측정 가능성(Measurable)·운영성(Operational)·합리성(Rational) 지표를 적용해 평가했다. 간략한 내역과 개선방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달성 가능성은 50점 만점에 29점으로 평균 이상의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정치·경제 공약의 달성 가능성이 각 7점으로 양호하다. 외국인 주민의 구정참여 기회 확대는 올해 1000명을 시작으로 2026년 2000명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며 1억4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구로사랑상품권 확대 발행은 2022~2026년 총 2213억 원 규모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이다. 할인금액 10%인 221억 원은 올해 구로구 예산 9312억 원의 2.38%에 해당되며 교육, 국토·지역개발에 투입되는 예산과 비슷하다.

둘째, 적절성은 공약이 구로구의 다양한 여건에 적합한지 평가하는 지표이며 25점을 획득했다. 공약 대부분이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무난한 수준이다. 고지대 도로 전기열선 도입은 제설취약구간 고지대에 도로열선을 설치해 강설 시 초기 제설능력을 향상시켜 주민에게 안전한 도로환경을 만들겠다는 정책이다.

셋째, 측정 가능성은 공약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며 25점을 받았다. 문 구청장이 기업을 경영하며 구체적인 사업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있어 완료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공약을 많이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경제 공약 중 창업허브 조성·청년창업지원센터 설립·중장년 일자리센터 확충은 예산만 투입하면 쉽게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성 여부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공무원이 가장 잘 수행하는 유형의 공약에 속한다.

넷째, 운영성은 행정조직과 공무원이 공약을 실천할 역량과 조직체계를 구축·운영했는지 평가하는 지표로 21점을 획득했다. G밸리 4차 산업형 청년취업사관학교 조성 공약은 20~30대 청년 구직자에게 디지털 신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주변 교육인프라가 부족하고 공무원이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인재를 육성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 AI 관련 인재만 보면 수십 년 동안 정보기술(IT) 관련 인재육성 경험이 풍부한 멀티캠퍼스조차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멀티캠퍼스는 삼성그룹 계열 기업교육 전문 기업이다.

다섯째, 합리성은 공약이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주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며 25점을 받았다. 과학기술 공약인 빅데이터·AI·IoT 등 4차 산업 육성·발전은 △G밸리 기업 4차 산업 혁신기술 지원 △G밸리 구로캠퍼스 조성 △4차 산업혁명자문위원회 운영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문 구청장은 지원사업 과제당 1억 원, 4개 과제에 총 4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중앙정부조차도 개별 핵심 기술에 수천억 원을 투자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4년 동안 지원하는 시늉만 내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종합적으로 문 구청장의 선거공약은 4년 동안 75개를 충실하게 이행해도 250점 만점에 125점으로 달성률은 50.0%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평가한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으며 119점을 받은 2위 서초구보다 6점이나 높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공약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공약을 평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력해 개발한 모델이다. 5G는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 밸리(Valley)는 계곡을 의미한다. 문명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곡에서 탄생해 발전했기 때문에 국가·지자체가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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