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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급작스럽게 선포하며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다. 비상게엄령은 국회 의결에 따라 곧바로 해제됐지만 동원됐던 경찰과 군대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특별검사의 조사결과를 보면 주요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국군정보사령부, 육군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경찰청 등을 이끄는 지휘부가 적극 가담했다.특히 군대 내 쿠테타와 같은 모반 행위를 염탐하고 예방해야 하는 방첩사가 비상계엄령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비상계엄령 관련 방첩사의 내부고발 사건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 국군방첩사령부 내부고발 사건 진행 내역 [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iNIS)]◇ 군 반란을 막기는커녕 군사 쿠데타 주역으로 전락... 지휘부를 제외한 영관급 이하 장교는 불법명령 거부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난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최전선으로 전락했다.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과 이후 이어진 5·16 군사 쿠데타, 12·12 군사 쿠데타는 국내 정치에서 군부의 입김을 강화시켰다.1993년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다. 하지만 육해공군 모두 사관학교 출신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문민정부 이후에도 국방부의 문민화는 좌절됐으며 국방부 장관은 장성 출신이 독차지하는 관행이 유지됐다. 군은 중요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은영 중에 무력을 드러내며 영향력을 과시했다.국군방첩사령부는 1948년 창설된 조선경비대 특별조사과가 모태이며 1977년 육·해·공군의 보안부대를 통합해 국군보안사령부가 탄생했다.보안사는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내부고발로 해체돼 국군기무사령부로 개명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 당세에 계엄령 문건을 작성해 논란을 초래했다.이명박&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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