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1
" 삼성상회"으로 검색하여,
2 건의 기사가 검색 되었습니다.
-
2008년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을 강조하며 대기업 우선의 성장정책을 펼쳤다. 표과가 없어 사장됐던 용어를 다시 꺼집어 낸 것은 2022년 권력을 쥔 윤석열정부였다.2022년 7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규제·세금 완화, 기업 투자 제고, 경제 활성화, 세수 확충이라는 낙수효과로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기업에 대한 규제완화·감세로 투자를 이끌어내고 고용을 창출하며 소비가 증가하는 경제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이 낙수효과의 목표다.대기업은 윤석열정부의 정책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낙수효과로 좋아졌다는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오히려 대기업의 편중이 심화되며 지속가능 성장의 기반이 붕괴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 삼성문화 4.0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표지 [출처=글로세움]◇ 창업주의 동업 실패가 협력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제공한 요인... 2~3세 경영철학도 바뀌지 않아최근 삼성그룹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가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는 수 많은 협력업체와 공조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배려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삼성의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이 협력업체와 삐그덕거림은 이병철 회장의 초기 동업의 실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동업에 대한 생각과 철학, 행동방식이 상생하지 못하는 기업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건강상의 문제로 학업을 중단한 채 귀국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시작했다.물산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쌀과 건어물 등을 사들여 만주나 일본으로 파는 무역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전쟁물자가 부족했고, 만주도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조달하면서 수요가 많았다.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의 곡물수탈 정책에 따라 쌀의 매입이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거의 전력 때문에 삼성은 일본의 조선식민지 정책의 수혜자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지만 약간 억지로 보인다.일본이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삼성상회의 사업은 번창했다. 해방 이후인 1948년에는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겨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다.해방 이후 열악한 국내 산업시설과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던 소비재 수입을 위해 무역업에 주력했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6·25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전란으로 초래된 물자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수입대체 정책을 잘 활용했다.1950년대 초 설립한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은 밀가루, 설탕 등 수입에 의존하던 생활필수품을 국산화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1960년대 들어 삼성은 정부의 경제계획에 재빠르게 편승했다. 당시 정부는 후진적이고 소규모인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몇몇 업체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신규 업체의 진입을 규제하는 방식을 취했다.정부 정책에 따라 재벌기업은 어떤 산업이라도 무조건 진출해보자는 식의 전략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재벌의 문어발 기업경영의 출발점이 됐다.재벌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1980년대 조선과 전자산업 등의 영역에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됨으로써 관련 계열사를 계속해서 늘릴 수 있었다.1979년의 2차 오일 쇼크, 1980년대 초 3저 현상도 국내 기업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86년 아시아게임,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국가이미지가 상승되면서 대기업도 해외시장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이병철 회장의 초기 경영 특징 중 하나는 위험부담 회피를 위해 적극적으로 동업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1962년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동양를 같이 인수하면서 동업을 시작했다.하지만 양측에서 파견한 직원 간 의견충돌이 잦아지자 구인회 회장은 '돈'보다는 '인간관계'가 우선이라면서 지분을 정리하고 떠났다. LG는 인화경영을 중시한다.효성그룹의 조홍제 회장과의 동업은 더욱 복잡하고 길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병철 회장과 조홍제 회장 두 사람은 1949년 삼성물산공사, 1954년 ㈜제일모직공업을 같이 설립했다.1960년 3월 동업관계가 정리되었지만 지분에 대한 다툼은 오래 지속되었고 1965년이 되어서야 종결됐다. 조홍제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갖고 있던 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일론의 지분을 받는 대가로 제일제당 등의 지분을 포기했다.2000년 발간된 조홍제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이병철 회장과 동업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이병철의 집필한 『호암자전』과는 다른 내용이 있어 진위 여부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판단하지 않는다.이병철 회장은 1950년대 중반 제일제당의 설탕을 독점판매하던 동양그룹의 이양구 회장과도 동업을 진행했다. 이들의 관계는 1956년 이양구 회장이 삼척시멘트 인수를 주장하면서 무너졌다.이양구 회장은 정부의 경제재건 계획에 따라 시멘트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견하여 인수를 주장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반대했다.결국 이양구 회장이 제일제당의 주식을 팔고 삼척시멘트를 독자적으로 인수해 동양세면트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후 동양세면트는 사업환경 악화에 따른 경영부실로 동양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경영 측면에서 보면 이병철 회장의 인수결정 반대가 옳았다고 본다.기업문화에는 창업주의 경영철학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병철 회장이 어떤 이유에서든 동업자와 오래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거나 불만족하게 동업을 청산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삼성에 상생의 기업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것은 사업 초창기 창업주의 경력과 고집이 반영됐다고 본다. 삼성 내부에 ‘내가 최고’, ‘나만이 옳다’는 제일주의가 팽배하면서 파트너와 협력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상생 마인드가 부족한 기업문화는 삼성의 사업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병철 회장 이후 2대인 이건희 회장, 3대인 이재용 회장도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답습해 개선되지 않았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사회주의 용어라고 비판받아...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동물' 신세가 된 중소기업한국 대기업은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거나 사업 규모가 작을 때는 협력업체에 맡기다가 사업성이 확실하게 보이면 바로 합병하거나 회사를 설립한다.기술이 괜찮은 벤처기업이 있으면 어떻게든 독점 납품계약을 체결한다. 처음에는 매출을 보장해주다가 납품업체를 다변화하는 방법으로 매출을 줄여 나간다. 혹은 매출을 보장해주는 댓가로 터무니없는 원가절감을 요구한다.핵심 기술자를 스카우트해 위장 협력업체를 차려 기존 협력업체를 고사시키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국내 대기업은 대부분 협력업체와 분쟁이 빈발한다.특허권을 침해했다는 불평에서부터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물량 줄이기, 거래단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소위 말하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대기업 우선주의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더 열악해졌다.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상승해 오히려 납품단가를 더 올려 받아야 하지만 대기업은 수출채산성을 들먹이며 납품단가를 강제로 깎기 일쑤다.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대기업의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해 고환율정책을 유지했지만 그 혜택은 대기업에만 집중됐다.당시 이명박정부는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고 이익을 내면 중소기업도 덩달아 돈을 벌고 국민소득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대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와 동반성장해야 한다. 대기업은 제품 기획력과 마케팅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초과이윤을 창출한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대기업의 불합리한 중소기업 처우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례로 입증할 수 있다. 대기업은 덩치가 크고 위험을 회피하기 때문에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2011년 이명박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들고 나온 것도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한 것이다.사회주의 용어라는 비판에서부터 협력업체가 너무 많고 비중을 측정하기 어려워 이익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다.당시 여당의 주요 정치인, 보수 언론, 보수 경제학자 등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반대했다. 대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이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무조건 반대했다. 그러나 용어의 적절성 논란을 뒤로 한다면 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국내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관계를 동물원의 ‘사육사’와 우리 안에 갇힌 ‘동물’에 비유한다.사육사는 갇힌 동물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먹이는 주지만 관리하기 힘들 정도로 충분히 주지는 않는다. 야성을 잃은 동물의 능력이 서서히 퇴화하듯이 제품개발과 경영혁신의 열정을 잃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핵심경쟁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계속 -
-
최근 삼성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의 경영을 진단할 '경영진단실'을 신설했다. 2023년 11월 10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미래사업기획단'을 출범한 이후 단행한 조치다.다른 재벌 기업과 달리 삼성그룹은 기획 기능을 활용해 신사업을 확장해 위험을 줄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던 경험도 큰 자산이다.1938년 설립된 삼성상회에서 출발한 삼성그룹은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며 미래 지향적인 사업구조를 갖췄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그룹의 면면을 갖췄다면 2대 이건희 회장은 짜임새 있는 경영으로 대도약을 일궜다.◇ 취임 후 30년 동안 이익 259배 및 시가총액 396배 성장... '초일류 삼성' 만들기에 성공엠아이앤뉴스(대표 최치환)는 삼성그룹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회장 이재용)에 이건희 전 회장의 업적에 대한 회신을 요청했다. 아래에 삼성전자에서 보내온 답변을 정리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후 매출액과 순이익의 변화는."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이룩한 경영성과는 취임 당시 10조 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다.이익은 1987년 2000억 원에서 2018년 72조 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해온 삼성은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재임 기간 중 성과 비교 [출처=iNIS]-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핵심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이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인재중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삼성은 이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삼성의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 '기술중시'를 통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했는지."반도체 사업이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한 사례는."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했다.이대로 있으면 삼류, 사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 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바랬다.그것은 양(量)이냐 질(質)이냐의 선택이었고 국내 제일에 머물 것인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초일류로 도약할 것인가의 선택이었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온 배경인 것인지."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추진했다.1993년 6월부터 8월 초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쿄에 이르는 대장정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800여 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회의와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인지."이제까지 지속되었던 양 위주 경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질을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구조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질 위주 경영은 신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질 위주 경영을 위해 어떤 점에 초점을 맞췄는지."불량을 없애는 제품의 질부터 혁신을 시작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을 선진 수준으로 낮추도록 했으며 한 품목이라도 좋으니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라인스톱제도를 도입했다."-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화형식도 사회에 큰 충격을 줬는데."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1995년 1월 이건희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이와 함께 15만 대, 150여억 원 어치의 제품을 수거해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했다.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도전정신(Challenge)을 발휘한 사례는."혈연·지연·학연이 끼지 않는 공정한 인사의 전통을 조직에 뿌리 내리고 연공서열이나 각종 차별조항을 철폐하여 시대 변화에 맞는 능력주의 인사를 도입했다."- 채용시험에서 학력을 폐지했는데."1995년 7월 채용 때 학력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포함한 열린 인사 개혁조치를 발표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열린 인사는 기회균등 인사, 능력주의 인사, 가능성을 열어주는 인사 등 3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주의 인사도 파격적이었는데."급여 인상이나 승진·승격 때 본인 스스로 일구어 낸 능력과 업적에 따라 대우받게 하는 것이다. 1년 간의 고과 결과에 따라 개인별로 급여가 차별화되고 능력만큼 보상받는 능력급제를 단계적으로 모든 계열사에 실시했다."- 남녀차별을 없애고 여성인력 채용을 확대했는데."1992년 4월 여성전문직제를 도입하고 1차로 비서전문직 50명을 공개채용해 전문지식과 우수한 자질을 보유한 여성인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사무직 여사원들에게 적용해 오던 근무복 제도를 1995년 3월부터 폐지하고 자율에 맡겨, 각자 개성을 살린 복장을 할 수 있게 했다.기혼 여성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서울과 전국 주요 사업장에 어린이집을 설치했다."- 항상 도전정신을 강조했는데."2010년 경영에 복귀하며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고 역설했다."- 삼성의 미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삼성의 미래는 신사업, 신제품, 신기술에 달려 있다고 봤다. 특히 기업문화를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실패는 삼성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기를 당부했다."- 열정(Passion)을 발휘한 사례는."이건희 회장은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다. 부정보다 더 파렴치한 것이 바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고 하며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재양성을 위한 대표적인 사례는."1990년부터 지역전문가제를 운영하여 2012년까지 4400여 명을 세계 각국에 파견했다. 1994년 제조 부문의 과·차장급 간부를 대상으로 테크노 MBA 과정, 1995년 경영지원 부문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소시오 MBA 과정을 각각 도입했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제정한 이유는."1994년부터 신경영 철학을 확산하고 성과를 치하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임직원을 시상하고 있다."- 포용성(Inclusion)을 발휘한 사례는."한 사장급 인사가 이건희 회장에게 '저는 나이도 많은데 쫓아내지 마시고 한 5년만 있게 해주십시오'라며 용기를 내어 부탁했다. 이 회장은 웃으며 받아들였고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일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만 2~3년 만에는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성과를 낼 때까지 시간을 준 것이다."- 구조조정하는 사업부 소속 직원에 대한 인식은."일하던 직원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것을 죄악시했다. '사업은 우리가 여건이 안돼서 접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뽑은 인재들인데... 또 거기에다 가족을 생각하면 우리가 잘 챙겼어야 하는데... 라며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했다."-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인식은."사회공헌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도록 했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발휘한 대표적인 사례는."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맹인 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진행 중이다. 매년 연인원 50만 명이 300만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도 땀을 흘리고 있다."- 협력업체에 대한 인식은."삼성의 협력업체도 바로 삼성가족이다. 그들에게 인격적인 대우와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어 회사와 협력업체가 하나의 공동체이며 한 가족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줌으로써 참된 공존공영을 이룩하는 것 또한 인간중시 경영의 하나라고 믿었다."- 사회구성원으로 책임인식은."삼성은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기업상을 구현해야 한다. 소외된 이웃에 눈을 돌리고 따뜻한 情과 믿음이 흐르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선도기업인 우리의 책임이다.주주, 고객, 국민 어느 누구에게도 떳떳하고 당당한 바른 경영, 믿음을 주는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얻고 사회의 사랑과 격려를 받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체육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는데."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쳤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제2의 창업에 성공했지만 '경영의 신'으로 불리기는 부족해... 포용성·사회적 책임에 대한 아쉬움 강해일본의 기업인 중 이른바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기업인은 파나소닉의 마츠시다 고노스케, 혼다의 혼다 소이치로, 교세라의 가즈오 이나모리 등 3명이다.이들이 전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는 기업을 크게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사회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1945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80년 동안 한국에서는 이러한 칭호를 얻은 기업인은 1명도 없다. 아쉽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삼성그룹의 2대 창업자로 불리는 이건희 전 회장의 역량과 성과를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경영자의 역량평가 지표를 적용한 이건희 회장 평가 결과 [출처=iNIS]국가정보전략연구소는 경영자의 역량평가 지표로 리더십(Leadership), 도전정신(Chanllenge), 열정(passion), 포용성(Inclusion),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등 5가지를 선정했다.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창업자는 아니지만 그룹을 승계한 후 신사업, 신기술, 신시장 등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국내 기업인 중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리더십은 △2세 경영자이지만 변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대혁신 추구 △양보다 질 위주 경영, 제품 화형식 추진 등이 우수했다고 평가했다.도전정신은 △채용시험에서 학력 폐지 △능력주의 인사, 남녀차별 폐지 △신사업, 신제품, 신기술 확보 주력 등이 다른 기업의 경영자와 차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열정은 △인재양성의 중요성 강조 △지역전문가, 테크노 MBA과정 등 운영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제정 등으로 현상 유지에 관심을 갖는 2세와 다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한 점을 고려했다.포용성은 △성과를 내기까지 기회를 제공 △구조조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채용한 직원과 가족에 대한 책임 강조 등을 통해 조직 융합을 추구했다고 봤다.사회적 책임은 △삼성사회봉사단 출범 △협력업체도 삼성가족으로 인식 △기업시민으로서 상생의 기업인상 구현 등이 경영자 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고 반영했다.종합적으로 이건희 회장은 리더십, 도전정신, 열정은 10점 만점에 각각 8점, 포용성과 사회적 책임은 각각 6점으로 평균 점수는 7.2점을 기록했다.이건희 회장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지만 우호적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협력업체나 기타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도 실질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대인 이재용 회장이 이러한 점을 수정 및 보완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계속 -
1